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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6일 장년성경공부 교안 - 준비된 주의 길

글쓴이 : 산호세한인침례교회 날짜 : 2015-12-04 (금) 15:04 조회 : 525
준비된_주의_길_마_3_01-12_.docx (25.6K), Down : 2, 2015-12-04 15:04:31

  ] 준비된 주의 길

  ] 마태복음 3: 1-12

암송구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3:3).

성경 진리]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약속된 왕으로 이땅에 오셨다.

 

1. 주의 길을 준비함( 3:1-6)

본문 3 1절로6절에서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구약성경의 율법과 예언을 성취한 일이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오심의 신호로 예언자들 중의 하나가 돌아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 어떤 사람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18: 18). 좀더 일반적으로는,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4: 5). 약속대로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예언자로 “침례 요한”을
보내셨다
.

 

유대인들은 지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있는 메시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다 그의 통치권을 확립하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 17: 20-21).
하나님의 통치는 이미 예수님이 오심으로 임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은 절박성의 필요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옛날에, 왕의 행차는 도로 공사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준비과정이 요구되었다.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진 길들은 왕이 행차하는데 불편하였다.
그래서 왕이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일꾼들이 먼저 가서 왕이 가는 길을 준비하였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침례 요한을 메시야가 오는 길을 준비하는 자로 보았던 것이다.
침례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요한이 먹었던 “메뚜기와 석청”은 광야에서 얻을 수 있는
특유한 음식물이었다
. 석청은 들의 벌들이 만드는 꿀을 가리키는 말이다.

 

침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주변으로부터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 들었다
(3:5). 그같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절박하고도 단호한 멧시지는 확실히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말라기 이후 지난 400년 동안은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암흑의 시기였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을 갈망하였고, 침례 요한을 이를 전하였다.
사람들은 요한이 전파하는 말씀에 대해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는 것으로 응답하였다( 3:6).
침례 요한이 베푼 침례는 회개의 결단을 상징하였다.
그것은 또한 회개를 함으로 죄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은 것을 나타냈다.
그것은 또한 변화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공적인 약속이 되었다.
“침례”라는 말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을 뜻한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침례 요한에게로 오셨다( 3: 13).
물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 4: 15), 회개의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셨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것은 먼저 자신의 사역을 세상에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시고 침례의 뜻을 넓게 확장시키셨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침례는 죄를 사함 받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을 상징하고 있다

 

1. 진리를 전파함 (3: 7-10)

침례 요한이 전파하는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외적 요구조건들을 지키고 따르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믿었다.
“사두개인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귀족들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그들은 제사장 직분과 성전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한 편으로, 그들은 율법에 대해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
사두개인들은 토라, 즉 모세의 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매우 자유스러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사회적인 특권을 계속 누리기 위하여 로마 통치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특권적인 위치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충돌을 빚었다
. 유대교의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은 이들 두 그룹의 하나에 속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의회 겸 법원이었던 산헤드린은 대부분이 사두개인들이었다.  

 

침례 요한은 그 같은 종교 및 사회 지도자들이 자기가 예언의 말씀을 전파하며
침례를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았다
. 침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로 불렀다.
요한은 그들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침례 요한은 그들을 향하여서,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힐난을 했다.
요한은 무엇을 기준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하였는가?
요한은 그들 종교 지도자들이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구원에는 변화된 삶의 증거로 선한 일이 따른다.
요한은 또한 그들 종교지도자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은 잘못 알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죄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서의 유산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
그들은 유대인의 조상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은 특별하며, 다른 죄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침례 요한은 그 같은 생각은 그릇 되다고 주장하였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지를 정하는 것은 하나님이신 것을 종교지도자들은 잊고 있었다.
침례 요한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그 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였다.
유산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는
비유의 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였다
. 불은 심판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같은 비유를 사용하여 거짓 교사들을 묘사하였다 ( 7: 19).

 

2. 왕을 가리킴 (3:11-12)

회개하기 위하여 요한이 베푸는 침례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마음의 변화를 상징하였다
.
“내 뒤에 오시는 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그 말이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요한은 자기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광야의 놀라운 부흥운동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흥분에 휩싸이지 않았다.
요한은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는 말로,
예수님의 높으심과 자신의 낮은 상태를  대조시켰다. 신을 들고 다니는 것은 노예들이 하는 비천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하게 보였을지라도,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의 비천한 노예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특유의 힘과 권세는 침례 요한처럼 물로 침례를 베푸는데 있지 않고,
“성령과 불”로 침례를 베푸는 것에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물로 침례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권장하였지만
,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베푸신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풀 것이요”라고 한 말에서, “성령침례”와 “불 침례”는 같은 것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것이다. “성령 침례”는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고, 요엘 2: 28 -29에 예언된 것처럼,
영원한 선물로 성령님을 받는 경험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 13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
대신에, “불 침례”는 심판 혹은 영원한 형벌을 가리킨다. 죄를 회개하고 메시야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침례를 받고
,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가리키는 불의 침례를 받을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을 도끼로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에다 비유하였다.

 

적용하기]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피조물을 구속하시는 계획을 펼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 외의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거짓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전능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