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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2일 장년성경공부 교안 - 믿음의 시험

글쓴이 : 산호세한인침례교회 날짜 : 2015-11-20 (금) 14:58 조회 : 572
믿음의_시험_창_22장_.docx (24.3K), Down : 3, 2015-11-20 14:58:40

제목] 믿음의 시험
본문] 창세기 22: 1-14
성경진리]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22:8).   

본문 배경]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여호와를 따르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아브라함이 7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미지의 땅으로 갔는지를 보았다
. 아브라함은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 여러 해가 지나도록 그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 같은 결과로 인하여 이스마엘이 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변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태어났다.

 

본문 설명]

1. 시험의 제시 (창세기 221-2)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브엘세바”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그곳을 본 거지로 삼아 정착하게 된다
( 21:2234). 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셨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17: 5).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간단한 대답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듣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잘못 행하도록 유혹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신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을 연단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잠언 17 3절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고
한다
. 여기서 “연단한다”는 말은 불순물들을 제거하여 순수하고도 강하게 만드는 것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충격적인 일이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그것은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것이며, 미래의 희망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제단에다 태워서 드리는 희생제물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상징하였다.
여기서 번제의 뜻은 하나님이 이삭의 생명과
그와 함께 아브라함이 바라는 모든 것들을 요구하시는 것이었다
.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만 했다.

 

2. 시험을 위한 준비 (창세기 223-8)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먼 여행길을 떠날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 구절에는 강한 결의와 행동의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의 행동에서는 주저의 빛이나 불순종의 표가 조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준비하였다.

 

아브라함은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으로 떠났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자기가 목적지로 삼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하였다
.

 

히브리어로 “예배하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된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다.
그 같은 뜻은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말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한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삼상15: 22). 
“가서 예배하고”라는 아브라함의 말에서도 그 같은 뜻이 강조될 수 있다.

 

네 사람 중에서, 아브라함 만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삭과 함께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큰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던
아브라함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약속을 지키시고
자기와 이삭을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알고 있었다
.

 

아브라함은 나귀에게 싣고 왔던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운 다음,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은 함께 걸어갔다. 어떤 성경해석자들은
이삭이 번제나무를 지고 간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장소까지
가신 일의 예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을 때, 아들인 이삭이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번제물을 잡을 칼도 있고
, 그것을 태울 불과 나무도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번제를 위해 다른 방법, 즉 양을 준비해 주시고 있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순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세상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할 어린 양인 하나님의
독생자의 죽음을 통해 궁극적인 희생제물을 준비해 주시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급의 증거가 된다
.  

 

3. 시험의 합격 (창세기 229-12)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은 이삭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에 이르렀을 때에, 아브라함은 다듬지 않은 돌들을 쌓아서 제단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는 불이 잘 타게 제단 위에다 나무들을 벌려놓았다.

 

희생 제물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건강한 십대 소년이었던 이삭이 자기보다
나이가
100세나 더 많은 아버지를 피하였거나 힘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들은 자발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복종했던 것이다.
그가 그같이 복종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궁극적인 표현이었다.

 

그 같이 복종함으로, 이삭은 예수님의 표상이 되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감람 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다 ( 22: 42).
아브라함은 결박한 이삭을 제단나무에다 놓고 “손을 내 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였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함축되어 있는 총체적인 의미는
“그
(아브라함)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지라”고 한
히브리서 저자의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
( 11: 19).
아브라함은 그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려는 모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두 번씩이나 연속으로 부른 것에서는 절박감이 나타나고 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던 것이다.  
천사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아셨다
.

  

4. 생활 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적 성장의 일환으로 믿음의 시험을 받게 허락하신다.
참된 믿음은 항상 행하는 순종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주셨다.
아들을 믿는 믿음은 구원을 얻게 한다.